이 문서는 2차세계대전 관련 다큐멘터리와 교양 강의에 감명받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This documentary is dedicated to people sacrificed for World War II for humanity.
- 다큐멘터리의 엔딩 크레딧 中
다큐멘터리 성우 - 박상일
1-1. 독재자의 탄생(~ 1938)
- 독일, 베르사유 조약 파기 및 재군비 선언(1935)
- 영국-독일 해군조약(1935)
- 제2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1935)
- 독일, 라인란트 재무장(1936)
- 스페인 내전(1936. 7. 17 ~ 1939. 4. 1)
- 중일전쟁(1937. 7. 7 ~1945. 8. 15)
- 파나이 호 사건(1937)
- 독일, 오스트리아 병합(1938)
- 하산 호 전투(1938)
- 녹색 작전(1938)
- 뮌헨 협정(1938)
- 빈 중재(1938)
1-2. 나치의 독재(1939)
- 독일, 체코슬로바키아 병합(1939. 3월)
- 할힌골 전투(1939. 5. 11)
- 독소 불가침조약(1939. 8. 23)
유럽 동부
- 폴란드 침공(1939. 9. 1)
- 브주라 전투
- 바르샤바 전투
- 겨울전쟁
유럽 서부
- 가짜 전쟁
2. 프랑스의 참패(1940)
유럽 서부
- 프랑스 침공(1940. 5. 10 ~ 1940. 6. 25)
- 아라스 전차전
- 다이나모 작전
- 캐터펄트 작전(1940. 7. 3)
- 영국 본토 항공전(1940. 7. 9)
- 타란토 공습(1940. 11. 11)
3. 홀로코스트의 시작(1941)
유럽 서부 / 대서양
- 비스마르크 추격전
유럽 동부
- 바르바로사 작전(1941. 6. 22)
- 레닌그라드 포위전
- 모스크바 공방전
- 페르시아 침공
태평양
- 남방작전
- 웨이크 섬 전투
- 싱가포르 전투(1941. 12. 8 ~ 1942. 2. 15)
- 말레이 해전
- 진주만 공습(1941. 12. 7)
4. 전쟁의 절정(1942 ~ 1943)
유럽 동부
- 르제프 공방(1942. 1월 ~ 1943. 3. 22)
- 청색 작전
- 제2차 하르코프 공방전
- 세바스토폴 공방전
- 스탈린그라드 전투(1942. 9. 13)
유럽 서부 / 대서양
- 영국 해협 돌파작전(1942. 2. 11 ~ 1942. 2. 13)
- 디에프 상륙작전(1942. 8. 19)
- 마다가스카르 전투
지중해 / 북아프리카
- 엘 알라메인 전투(1942. 6. 30)
- 횃불 작전(1942. 11. 8)
유럽 북부
- 바렌츠 해 해전(1942. 12. 25 ~ 1943. 1. 9)
태평양
- 미드웨이 해전(1942. 6. 4 ~ 1942. 6. 7)
- 과달카날 전투(1942. 8. 7 ~ 1943. 2. 9)
카사블랑카 회담(1943. 1. 14 ~ 1943. 1. 26)
유럽 동부
- 쿠르스크 전투(1943. 7. 5 ~ 1943. 7. 15)
유럽 서부 / 지중해
- 이탈리아 항복
북아프리카
- 튀니지 전투
태평양
- 비스마르크해 해전
- 타라와 전투(1943. 11. 20 ~ 1943. 11. 23)
5.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
유럽 동부
- 코르순-체르카시 포위전(1944. 1. 24 ~ 1944. 2. 16)
- 카메네츠-포돌츠크 포위전(1944. 3. 22 ~ 1944. 4. 5)
- 바그라티온 작전(1944. 6. 22)
- 바르샤바 봉기(1944. 8. 1)
- 부다페스트 공방전
유럽 서부
- 노르망디 상륙작전(1944. 6. 6)
- 마켓 가든 작전
- 아르덴 대공세
유럽 북부
- 라플란드 전쟁
태평양 / 아시아
- 사이판 전투(1944. 6. 15)
- 일본 본토 공습 ( ~1945. 8. 15)
기타
- 히틀러 암살 미수사건 및 발키리 작전(1944. 7. 20)
6. 전쟁의 끝(1945)
유럽 서부
- 독일 본토 항공전
- 드레스덴 폭격(1945. 2. 13 ~ 1945. 2. 15)
유럽 동부
- 베를린 전투
- 베를린 함락(1945. 5. 2)
태평양
- 이오지마 전투(1945. 2. 18)
- 도쿄 대공습 (1945. 3. 9 ~ 1945. 3. 10)
- 오키나와 전투(1945. 4. 1)
-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1945. 8. 6, 1945. 8. 9)
- 8.15 광복(1945. 8.15)
- 일본 항복 문서 서명(1945. 9.3)
| 제2차 세계 대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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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 1939년 9월 1일 ~ 1945년 9월 2일(6년 1일 간) |
| 장소 |
|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대서양, 태평양, 지중해 |
| 의의 |
| 현 21세기까지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 최악의 전쟁 |
| 주요 교전국 | 연합국 미국 소련 영국 프랑스 제3공화국(~1940) 자유 프랑스(1940~1944) 중화민국 |
추축국 나치 독일 일본 이탈리아 왕국(~1943)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1943~1945) 헝가리 왕국 |
|---|---|---|
| 주요 지휘관 |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해리 S. 트루먼 소련 이오시프 스탈린 영국 조지 6세 네빌 체임벌린 →윈스턴 처칠 →클레멘트 애틀리 자유 프랑스 샤를 드 골 중화민국 린썬 →장제스 |
나치 독일 아돌프 히틀러 →카를 되니츠 일본 쇼와 고노에 후미마로 →도조 히데키 →고이소 구니아키 →스즈키 간타로 이탈리아 왕국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베니토 무솔리니 헝가리 왕국 호르티 미클로시 |
| 결과 |
|---|
| 연합국의 승리 |
| 영향 |
| 20세기 파시즘의 소멸 식민제국들의 몰락 유엔 창설 냉전의 시작 |
| 군인 사망자 | 1,600만 명 이상 | 800만 명 이상 |
|---|---|---|
| 민간인 사망자 | 4,500만 명 이상 | 400만 명 이상 |
| 총 사망자 | 6,100만 명 이상 | 1,200만 명 이상 |
수 많은 이유가 있으며 학자마다, 사상마다, 정치적 견해마다 그 이유는 전부 다르다. 존 키건의 경우 이런 대규모의 전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보기 위해, 나폴레옹 시절의 유럽 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했다.
또한 이 전쟁을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보느냐 또한 매우 중요하다. 아래 다양한 주장들을 읽고 스스로 판단하기 바란다.
19C 유럽은 민족주의가 군국주의, 제국주의, 사회진화론과 결합되어 하나의 강력한 사상 체계로서 역할하게 된다. 개인은 민족의 일원으로서 의미를 가지며, 사회진화론이 제시한 약육강식의 세계 체제에 의해 민족은 생존을 위해 끊임없이 강해져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민족의 생존과 부흥이 지상과제로 떠올랐으며 이를 위한 수단은 군사력과 영토였다. 광대한 식민지와 거대한 군대는 단순히 한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유럽인들에게 식민지 경쟁은 알짜배기 땅 경쟁이 아니라 각국의 생존을 건 투쟁으로 변모한 것이다.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파시즘과 얽히면서 귀족 문화는 배격하고자 했지만 병영 사회만큼은 굳건했다. 참전 군인들의 경험도 이런 문화를 견고하게 했다. 여기에 더해지는 것이 게르만-슬라브 대립이다. 흔한 인식과는 달리 사실 나치는 게르만의 진로를 서가 아닌 동으로 잡았다.
유대인들은 유대교를 믿었기에 가톨릭 사회였던 유럽에서는 심한 차별을 받아왔다. 유대인들은 유럽 이주 후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유럽에서의 입지를 쌓았는데, 고리대금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유대인들을 유럽 일반 대중들은 결코 좋게 보지 않았고 유럽에는 반유대주의 정서가 퍼지게 되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이 점을 이용하여 유대인들을 아무리 교육시켜도 달리질 수 없으니 말끔히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워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홀로코스트로 약 6백만명의 유대인이 희생되게 되었다.
1차세계대전 이 후 소비에트혁명으로 소련이 등장하면서 독일에서도 공산주의를 꿈 꾸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반유대주의와 마찬가지로 나치는 공산주의자들을 국가전복세력으로 매도해 공포 분위기를 조장함으로써 반공주의를 지지하는 독일 국민들의 표를 얻어냈다. 독일 내 공산주의자들 역시 나치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대인들 만큼 심한 탄압을 받게 된다.
영국, 프랑스 등의 선진 제국주의 국가와 독일, 이탈리아, 일본을 위시한 후발 제국주의 국가간의 충돌이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이미 식민지들은 선진 제국주의 국가들이 깃발을 다 꼽아 놓은지 오래였고, 후발 제국주의 국가들이 살아남으려면 이 식민지들을 뺏어야하는데 이 과정에서 선진 제국주의 국가와의 충돌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주장이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것이 유럽국가들이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오히려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된 가장 큰 동기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의 결과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으로 프랑스와 벨기에에 대한 전쟁 배상금으로 1320억 마르크라는 거금을 강요당한다. 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된 날 기준으로 당시 독일이 지불 가능한 최대 배상 금액은 100억 마르크 정도였는데,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지고 산업시설이 파괴되어 피폐된 경제로 인해 화폐가치는 70%까지 폭락한 상황이라 배상금 지불은 절대 가능 할 수 없었다.
결국 이러한 불공정함을 바로잡겠다고 나타난 아돌프 히틀러에 의해 바이마르 공화국은 나치 독일로 흑화하고 나치 독일은 베르사유 조약을 파기하고 전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전 세계를 나락으로 빠트린 대공황이 불안하게나마 유지되던 바이마르 공화국을 붕괴시키고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을 탄생시키게 됐다는 주장이나, 대공황은 성냥일 뿐 진짜 원인은 베르사유 조약의 막대한 배상금과 더불어 프랑스가 전쟁 배상금을 받지 못했다는 명목으로 프랑스의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독일의 석탄 산지인 루르를 빼앗은 것이 독일 국민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혀 나치가 탄생하게 됐다는 것이다. 즉, 1차세계대전의 결과로 맺어진 과도한 배상금, 영토분할 조약의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했을 때 세계대공황이라는 휘발유를 드럼 통째로 던진 격.


